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편7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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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 작성자 : pastor
  • 조회 : 4,894
  • 13-10-04 02:50

기도는 무엇인가?

기도는 나의 주 하나님 절대의존이다.

이건 차라리 당연한 명제다. 그런데 왜 이것이 이렇게 낯설게 느껴지는가? 기도를 무엇을 구하는 도구로 여겼기 때문이다. 내 계획이 있는데, 그 계획을 이루기 위해 어떤 것이 필요하다. 그 필요한 것을 내가 스스로 마련하지 못한다.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힘을 빌어야 하는데, 그래서 하나님께 요청 드린다. 바로 이런 요청을 기도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기도를 하나님과 씨름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기도원에 가서 소나무 뿌리 몇 개를 뽑아야 응답 받는다고 주장한다. 그 소나무 뿌리가 하나님의 손인가? 하나님의 손을 붙들고 부르짖어 간구하는가?

사실은 그렇지 않다. 결코 그게 아니다. 기도는 기도로써 나의 계획도 나의 필요에 대한 지식도 모두 주님께 드림이다. 주님께서는 흙에서 나를 뭉쳐내어 성령을 주셔서 지어내셨고, 주님께서는 흉악한 죄 가운데 죽을 수밖에 없는 나를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로써 살리셨다. 그분을 이제 알아, 그분께 나를 내어 맡겨드림으로써 내 절대의존을 표현하고자 한다. 그것이 기도다.

그래서 모세는 기도 중에 손을 들었다. 그래서 엘리야는 기도 중에 머리를 무릎 사이에 박았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기도 중에 땀방울을 핏방울처럼 흘리셨다. 기도는 절대의존이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는 기도 중에 겸손을 배워야 한다. 기도하며 사는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향하여 교만하다면 그는 기도를 다시 드려야 한다. 기도하는 그리스도인은 그의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향내만 풍겨나기를 소망한다. 자기는 발걸음도 소리를 내지 않는다. 사람들이 나 때문에 주님 만나는 길에 방해받을까 염려하기 때문이다. 자기는 노래도 크게 부르지 않는다. 주님의 음성이 흐려질까 염려하기 때문이다. 자기는 있어도, 자기는 알아도, 자기는 배웠어도, 자기는 건강해도, 모두모두 자랑거리로 내세우지 않는다. 도리어 내가 못났기 때문에 있게 하셨고, 내가 모자라기 때문에 배우게 하셨고, 내가 연약하기 때문에 건강하게 하셨음을 고백 드린다.

기도는 지금 드려야 한다. 지금이 바로 내가 절대의존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지금 주님을 절대의존하지 않으면 쓰러져 버릴 것이고, 다시는 일어설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기도를 드려야 하는 것은 주님께서 내 손을 잡으셔야 내가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도는 지금 드려야 한다.

기도로써 나는 매일 순간순간을 이겨야 한다.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두루 찾는 원수 마귀를 대결하는 전략, 곧 최선의 방법은 하나님께 드리는 절대의존이다. 내가 스스로 섰다고 자부하면 그 순간 나는 마귀의 밥이다. 마귀는 나를 하나님으로부터 떼어놓기 위해 나를 치켜세운다. 내가 뭐 좀 있다고, 내가 뭐 좀 배웠다고, 내가 건강하다고 그렇게 스스로 말하기 시작할 때, 그 순간을 마귀는 결코 놓치지 않는다. 그 빈틈을 기다리기 위해 마귀는 그 영겁의 세월을 기다렸던 것이다! 그래서 절대의존 기도로써 나는 매일 순간순간을 이겨야 한다.



그러면 묻는다. 기도는 쌓아둘 수 있는가? 옛날에 기도 많이 했다고 그걸 적금처럼 지금 타내서 써먹을 수 있는가? 아니다. 그때는 그 기도가 필요했고 다 소진했다. 지금은 지금의 기도가 필요하다. 어제까지 말짱하던 사람이 오늘 쓰러질 수 있다. 이건 건강 이야기나 사업 이야기만은 아니다. 영적인 삶, 기도의 삶도 그렇다. 일용할 양식을 구하게 하신 주님께서, 일용할 영적 양식도, 일용할 기도도 구하게 하신 것이다. 주님께서 날마다 기도하셨다. 그래서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셨다.

또 묻는다. 그러면 지금기도 중인 어머니나 동생, 아내나 아들이 도움이 되는가? 그들의 기도 빚으로 어떻게 해 볼 수는 없을까? 없다. 기도는 철저히 내 기도여야 한다. 가끔 그런 사람을 만난다. 아버지가 장로님이고 어머니가 권사님이라고. 매일 새벽기도를 드린다고. 그게 어쨌다는 말인가? 한국의 철학과 교수 출신의 어떤 사람은 내 고향 마을의 교회 장로님 권사님 자식이다. 그런데 그 사람은 날마다 때마다 교회와 성경, 믿음과 예수님 부정하기에 바쁘다. 어떻게 그런 지식과 노력을 하나님 반대하는데 써먹는지! 그건 부모님의 기도와 정 반대방향이었다.

기도하라. 지금. 바로 당신이 기도하라.


그러면 마지막으로 묻겠다. 어떻게 기도하는가?

나는 성경기도를 강력 추천한다. 이건 내 추천이 아니라 예수님의 추천이다. 주기도문을 가만 들여다보면 모두 성경기도다. 물고기 뱃속에 있던 요나의 기도는 90% 이상이 시편기도에서 왔다. 히스기야의 기도도 엘리야의 기도도 모두 성경기도다. 우리 기도는 성경을 묵상하고 성경말씀을 따라 드리는 기도여야 한다. 어차피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구하는 것이 기도라면, 하나님의 뜻이 기록된 성경을 떠나서는 기도가 성립될 수 없다. 그래서 성경읽기는 그 자체로 기도다. 시편을 묵상하라. 당신은 기도중이다. 시편만 아니라 예레미야애가, 아가 등이 모두 기도다. 아니, 창세기, 출애굽기 같은 모세오경이나, 여호수아기, 사무엘기 같은 역사서, 이사야서, 예레미야서 같은 예언서, 그리고 마태복음과 로마서 같은 신약성경 모두가 다 기도서다. 우리 선배 신앙인들은 성경 페이지마다 손가락을 대고 읽었다. 읽을 때마다 곡조가 따라 붙었다. 그래서 기도가 되었고 찬송이 되었다.

기도는 나의 주 하나님 절대의존이다. 오늘도 기도로써 당신의 하루가 하나님의 하루가 됨을 믿으라. 하나님 안 계시면 당신은 없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으시면 당신은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하나님 없이 이루는 무엇이 설령 있다고 해도 그건 당신이 꿈꾸거나 바랄 내용이 아니다. 나 같으면 그런 성취는 쓰레기통에 버릴 것이다. 그건 독이며 그건 마약이며 그건 폭약이기 때문이다. 내가 무엇이 필요한지,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내가 자식을 어떻게 길러야 하는지, 내가 남편과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 내가 아내를 어떻게 사랑해 주어야 하는지, 내가 남북통일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아신다. 나는 기도로써 그분의 손에 드려지는 헌신이다. 내 기도는 그러므로 절대의존 헌신이다.


기도는 얼마나 길어야 하는가? 어떤 사람은 한 시간이 오히려 짧다고 한다. 짧은 기도는 효과가 없는가? 기도는 금식을 수반해야 더 좋은가? 누구는 일주일을, 누구는 사십일까지 금식했다. 기도는 어디서 해야 하는가? 아무래도 교회를 가야겠지? 새벽기도는 어떤 효과가 있는가?

영리한 독자라면 이런 질문을 이미 지혜롭게 대답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밑금 긋듯이 재확인하지 않으면 불안할 때가 있다. 어쩌면 세상일에 골몰하다가 잊어버렸을 수도 있다. 그래서, 지금부터 우리는 산야를 찾거나 물가를 찾아가는 심정으로 세상 등지고 우리 주님을 깊이 묵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지금부터 우리는 기도에 대하여 생각하고 기도에 대하여 의견을 나눈다. 폭넓게 보면 이런 행위 자체도 기도에 포함된다. 눈 뜨거나 생각을 멈추지 않거나 일하거나 하면서 드리는 기도도 가능한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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