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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주일설교#평온함#시편131

  • 작성자 : pastor
  • 조회 : 3,173
  • 18-05-26 18:37

2018527

금문교회 야외예배

조은석 목사

평온함

시편 131:1-3

1.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2.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3.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오늘 우리교회는 2년 만에 야외예배로 나왔습니다. 이전에 계속 오던 공원인데, 태평양 바다를 끼고 달려 여기 오는 동안, 하나님의 놀라우신 손길을 경험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 살면서 우리는 늘 바다를 느끼는데, 오늘은 특별한 은혜가 임했습니다. 우리는 예배하러 자연에 나왔습니다. 놀러 나온 것이 아닙니다.

다윗의 시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큰 지도자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 나타난 그는 겸손하기가 그지없습니다. 마치 젖 물린 아기가 평온함처럼, 스스로 평온하게 했습니다. 사람이 누리는 평온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인데, 스스로 그것을 어떻게 합니까?

1절이 그 비결입니다. 그의 마음이 교만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눈이 오만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않았습니다. 이 세 가지가 그 비결이었습니다.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않았다. 세 번째 내용인데, 과연 다윗은 그런 일을 성취한 자였습니다. 누가 보아도 큰 일을 했고, 아무라도 쉽게 감당할 수 없는 일을 그는 이루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힘쓰지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그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이루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사명이었습니다. “야망이 아니었습니다. 자기의 목표를 세우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는 것은 야망을 품은 자의 몫입니다.

다윗은 차라리 기도하는 자였습니다. 시편 150편 중에 거의 절반이 그의 찬양시입니다. 그는 예배드리는 자였습니다. 그는 자기의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 앞에 용서 받기를 구한 자였습니다. 그는 선지자 나단을 통한 하나님의 책망을 듣고 땅에 엎드려 용서를 빌었습니다. 겸손한 자였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그에게 큰 일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사람이 큰 일을 이루고 못 이루고는 큰 문제가 아닙니다. 누구나 다 은퇴합니다. 은퇴하고 나면 큰 사업을 했던 자나 작은 가게를 경영했던 자나 지위는 동일합니다. 훗날 무덤에 들어가고 나면 평등합니다.

문제는 그 이후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으리라는 것입니다. 거지 나사로처럼 일평생 인간다운 대접을 받지 못하고 살았던 자가 오히려 하나님 나라에 갔습니다. 사람들을 호령하며 웬만하면 함부로 대했던 부자가 지옥에 떨어졌습니다. 사람이 죽음으로 평등하지만, 따지고 보면 사람은 하나님의 판단에 달렸습니다.

세상에서 존귀와 영화를 누리던 자는 영생이 보장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어떻게 판단하실지, 온전히 그분께 달린 것입니다.

다윗이 자기의 부귀와 영화를 큰 가치를 두지 않은 것도 그런 이치입니다.

어떤 사람이 정계에 진출하려고 기획하다가, 그만 오늘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드 뜻을 접었습니다. 정치하는 데서 전혀 마음이 평온하지 않은 까닭이었습니다. 어제의 친구가 오늘 적이 되는, 차라리 거기는 정글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가정이 흔들리고 건강을 상해 가면서까지 사업을 벌이다가, 오늘 시편 131편을 읽었습니다. 그는 사업을 접고, 가정으로 돌아갔습니다. 식구들과 아름다운 저녁을 보내는 평범한 생활 중에 건강도 되찾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고민이 많았습니다. 자기의 삶을 저주하고 괴롭게 했습니다. 그런데 시편 131편을 읽었습니다. 오늘 다윗이 그랬던 것처럼, 그는 젖 물린 아이를 떠올렸습니다. 잔뜩 배 부르게 젖을 먹은 아이가 어머니의 품에 있습니다. 그것은 이상이며 꿈입니다. 그것은 바라보아야 할 자아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고민을 버렸습니다.

나는 오늘 여러분이 시편 131편을 읽기를 바랍니다. 지금 이 말씀이 여러분의 삶에서 어떤 변화를 줄지 기대해 보십시오.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평온함을 되찾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머니의 품에서 젖을 물리고 잠이 들던 그 때 이후 상실했던 평온함, 그것이 돌아올 것입니다.

누구는 저녁이 있는 삶, 그랬지만, 다윗은 평온함이 있는 삶, 그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여기에 모든 열쇠가 있습니다. 평온한 삶이 보장되는 것은 교만을 버리고, 오만하지 않으며,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않는 것, 이 세 가지로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를 바라는 데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를 바라보는가, 거기에 모든 것이 달렸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라! 히브리서 121-2절입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믿음을 주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낙심할 때, “내게로 오라!”고 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십니다. 평온함을 주시는 분은 바로 그분입니다.

그러므로 바라보는 데 모든 것이 달린 것입니다. 세상을 보면 세상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을 보면 하나님께 속한 자가 됩니다. 오늘 자연을 보면서, 자연 속에서 예배를 드립니다. 우리가 여기서 자연을 보면서, 거기 그치지 말고, 그 자연을 만들어 오늘 우리 앞에 허락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평온한 삶이 올 것입니다. 지금부터 영원까지!

3주 후에 우리는 북미 원주민 선교를 떠납니다. 우리가 무슨 교만하거나 오만한 자로 가서는 안 됩니다. 겁나는 프로젝트를 세워서 될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평온해 질 것이며, 그 평온을 나누게 될 것입니다.

시편 120-134편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입니다. 나는 우리가 선교하러 후파와 유락 지역에 가면서, 오히려 그 곳에 하나님의 성전을 부흥케 하고, 무너진 교회당을 세우며,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함을 증거합니다. 그것이 다윗의 삶이었고, 그것이 모든 믿는 자들의 삶이었으며, 오늘 우리의 삶이어야 합니다.

평온함이 없이 큰 일을 이룰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건 모래성에 다름 아닙니다. 무릇 모래성은 그 무너짐이 시간 문제일 뿐입니다.

다윗은 예루살렘을 마련한 자였습니다. 그 자리에 성전이 설 것을 하나님께로부터 듣고 알았습니다. 예루살렘 그 높은 성전을 언제나 바라보고, 그 거룩한 성전에 계신 여호와 하나님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바라보았습니다. 그의 육신은 낡아졌으나, 그의 영혼은 영생하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의 인생은 고난이 많았으나, 그의 결국은 평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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