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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2#주일예배#아하시야#열왕기하 1:1-18

  • 작성자 : pastor
  • 조회 : 2,881
  • 18-07-20 13:03

2018722

금문교회 주일예배

조은석 목사

아하시야

열왕기하 1:1-18

1. 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이 이스라엘을 배반하였더라.

2.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 있는 그의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매, 사자를 보내며 그들이게 이르되, “가서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이 병이 낫겠나 물어보라,” 하니라.

3. 여호와의 사자가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이르되, “너는 일어나 올라가서, 사마리아 왕의 사자를 만나, 그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

4.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엘리야가 이에 가니라.

5. 사자들이 왕에게 돌아오니, 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돌아왔느냐?” 하니,

6. 그들이 말하되, “한 사람이 올라와서 우리를 만나 이르되, ‘너희는 너희를 보낸 왕에게로 돌아가서 그에게 고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네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려고 보내느냐? 그러므로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하더이다.”

7. 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올라와서 너희를 만나 이 말을 너희에게 한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더냐?”

8. 그들이 그에게 대답하되, “그는 털이 많은 사람인데, 허리에 가죽 띠를 띠었더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그는 디셉 사람 엘리야로다.”

9. 이에 오십부장과 그의 군사 오십 명을 엘리야에게 보내매, 그가 엘리야에게로 올라가 본즉, 산 꼭대기에 앉아 있는지라. 그가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왕의 말씀이 내려오라하셨나이다.”

10. 엘리야가 오십부장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너와 너의 오십 명을 사를지로다,” 하매, 불이 곧 하늘에서 내려와 그와 그의 군사 오십 명을 살랐더라.

11. 왕이 다시 다른 오십 부장과 그의 군사 오십 명을 엘리야에게 보내니, 그가 엘리야에게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왕의 말씀이, ‘속히 내려오라하셨나이다,” 하니,

12. 엘리야가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너와 너의 오십 명을 사를지로다,” 하매, 하나님의 불이 곧 하늘에서 내려와 그와 그의 군사 오십 명을 살랐더라.

13. 왕이 세 번째 오십 부장과 그의 군사 오십 명을 보낸지라. 셋째 오십부장이 올라가서 엘리야에 이르러, 그의 무릎을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원하건대 나의 생명과 당신의 종인 이 오십 명의 생명을 당신은 귀히 보소서.

14.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전번의 오십부장 둘과 그의 군사 오십 명을 불살랐거니와, 나의 생명을 당신은 귀히 보소서,” 하매

15. 여호와의 사자가 엘리야에게 이를되, “너는 그를 두려워하지 말고, 함께 내려가라,” 하신지라. 엘리야가 곧 일어나 그와 함께 내려와 왕에게 이르러

16. 말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사자를 보내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려 하니, 이스라엘에 그의 말을 물을 만한 하나님이 안 계심이냐? 그러므로 네가 그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하니라.

17. 왕이 엘리야가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죽고, 그가 아들이 없으므로 여호람이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니, 유다 왕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의 둘째 해였더라.

18. 아하시야가 행한 그 남은 사적은 모두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오늘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왜 어떻게 죽었는가, 그 이야기입니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인물 이야기를 한 장 가득 실은 동기가 궁금합니다.

세 차례 반복해서 나온 하나님의 말씀으로 요약합니다.

이스라엘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

그런데 살고 죽는 문제를 죽은 우상 신에 불과한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는 것은 옳지 않다.

그의 아버지 아합과, 그의 어머니 이세벨의 뒤를 따라 우상숭배 하는 아하시야로서는 하나님이 아니라 바알세붑에게 묻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럽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오늘 본문에 드러난 하나님의 뜻은 이렇습니다: 우상숭배 자체는 죽음일 뿐이다. 그가 병들었기 때문에, 그 병으로 죽기도 하지만, 설령 건강하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그를 쳐서 죽이신다.

그의 아버지 아합이 어떻게 전장에서 죽었는지(왕상 22:29-40), 그의 어머니 이세벨이 어떻게 바닥에 던져져 죽임을 당했는지 (왕하 9:30-37), 그것을 알면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게 보입니다.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 있는 그의 집 다락 난간에서 떨어졌습니다. 병이 들었습니다. 사자들을 보냈습니다. “이 병이 낫겠나, 물으라!” 그가 보낸 것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이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엘리야에게 말을 했습니다. “너는 일어나 올라가라. 사마리아 왕의 사자들을 만나라. 그들에게 말하라: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

참고로, 아하시야가 보낸 사자들은 복수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자는 단수입니다. 갈멜산 때 대결처럼, 하나님 쪽이 소수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숫자가 아닙니다. 참과 거짓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엘리야에게 전하라고 준 메시지는, 아하시아갸 반드시 죽으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여호와 하나님을 찾지 않고 우상을 찾았다는 데 있었습니다.

우상을 만들어 섬기지 말라.

십계명 제2계명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계명은 생명과 관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 생명이 있습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But whose delight is in the law of the Lord, and who meditates on his law day and night.

시편 Psalm 1:2

주의 말씀대로 나를 붙들어 살게 하시고, 내 소망이 부끄럽지 않게 하소서.

Sustain me, my God, according to your promise, and I will live. Do not let my hopes be dashed.

시편 Psalm 119:116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God. He was with God in the beginning. Through him all things were made; without him nothing was made that has been made. In him was life, and that life was the light of all mankind.

요한복음 John 1:1-4

세상 이치가 그러한데, 아하시야는 그의 사자들을 바알세붑에게 보냈습니다. 죽은 우상이 산 자 인간의 살고 죽음을 어찌 알겠습니까?

오늘 우상이 무엇입니까? “물질입니다. 철학사를 한 눈으로 보면, 헤겔에게 두 제자가 있었습니다. 키에르케고르와 마르크스입니다. 둘 다 실존주의를 열었습니다. 키에르케고르는 신본주의 실존이며, 마르크스는 인본주의 실존입니다. 인본, 곧 인간 중심인데, 사람이 인간을 중심으로 두면 그 물질에 집착하는 법입니다. 물질이 인간을 결정한다는 주장입니다.

사람이 물질을 주장한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천지창조 하시면서 인간에게 허락하신 축복입니다. 그런데 물질이 사람을 주장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정반대로, 뒤집은 것입니다.

인본주의와 물질주의. 이것은 오늘 세태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이론입니다. 현대문화가 모두 자기중심의 문화입니다. 인간이 자기를 알고, 자기를 세상에 과시하며, 삶의 가치와 성취감을 누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도구가 물질입니다.

학교 이야기를 해 봅시다. 좋은 학교를 진학하려는 그 무서운 집념이 어디서 나옵니까? 거기서 진정한 삶의 가치를 배우고, 훌륭한 인격으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까? 그렇다면 소위 명문대학들은 그런 진정한 가치를 가르치고 휼륭한 인간으로 길러내는 학교입니까?

그것이 아닌 것은 우리 모두가 다 압니다. 좋은 대학을 나오면 직장을 잘 잡을 수 있습니다. 좋은 직장이란 연봉이 높은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모든 대학이 직업학교에 지나지 않습니다. 슬픈 이야기입니다.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물질중심주의를 벗어나고, 신본주의 철학을 지녀야 합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세상을 보아야지요.

사람들은 전쟁이나 각종 사회변동을 통해서 무엇을 봅니까? 영적으로 예민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읽습니다. 성경을 읽다가 급변하는 세상을 볼 때, 세상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뵙습니다. 그러나 물질주의에 붙들린 자들은 돈 벌 궁리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사회 격변기에 오히려 더 많은 돈을 법니다. 사람들은 죽고 굶주리고 아우성인데, 돈벌이 궁리에 바쁜 자들이 소위 엘리트라면, 세상의 미래가 어디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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