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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5 주일예배 #열 므나# 누가19:11-27

  • 작성자 : pastor
  • 조회 : 1,784
  • 19-08-24 16:05

2019825

금문교회 주일예배

조은석 목사

은 열 므나 비유

누가복음 19:11-27

11.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더라.

12. 이르시되,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13. 그 종 열을 불러 은화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14. 그런데 그 백성이 그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로 보내어 이르되,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나이다,’ 하였더라.

15.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돌아와서 은화를 준 종들이 각각 어떻게 장사하였는지를 알고자 하여 그들을 부르니

16. 그 첫째가 나아와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17.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18. 그 둘째가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나이다.’

19. 주인이 그에게도 이르되,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 하고

20. 또 한 사람이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보소서. 당신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 두었었나이다.

21.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

22. 주인이 이르되,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심판하노니,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로 알았느냐?

23. 그러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맡기지 아니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와서 그 이자와 함께 그 돈을 찾았으리라,’ 하고,

24. 곁에 섰는 자들에게 이르되, ‘그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 하니,

25. 그들이 이르되, ‘주여. 그에게 이미 열 므나가 있나이다.’

26. 주인이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27. 그리고 내가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하였느니라.

오늘 예수님의 비유는 어떤 귀인이 등장합니다. 그 사람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갔습니다. 이 사람이 누구입니까?

이 사람은 첫째로 헤롯대왕입니다. 그는 로마로 건너가서 왕위를 받아가지고 왔습니다. 당시는 로마의 식민통치 시대였습니다. 각 식민지 민족들을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자체 왕위 제도를 허락했습니다. 그러나 이 왕은 결코 독립적인 나라의 왕이 아닙니다. 로마제국의 통치를 받아야 하는, 극히 제한된 통치권을 행사하는 자리입니다. 독립된 나라의 왕이라면 수세권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한된 왕은 세금을 걷어서 로마에 바쳐야 합니다. 제한된 왕은 또한 군사권이 없습니다. 군대를 모집하고 전쟁을 선포할 수 있는 권리가 없습니다. 한마디로 헤롯이 얻은 왕권은 로마제국의 하수인 역할에 불과합니다.

이런 방식은 세계 역사에서 수많은 예가 있습니다. 한반도의 경우, 구테타로 나라를 세운 사람이 강대국에 가서 승인을 받는 절차가 있었습니다. 고려말에 고려의 세자가 몽골로 가서 일정 기간 교육을 받은 후에 몽골 공주와 혼인하고 왕으로 임명 받아 고려에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통치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공민왕이 그런 경우였습니다. 조선을 세운 이성계가 중국에 사신을 세워 건국 승인을 받고, 나라 이름을 하사 받은 경우입니다.

그런데 헤롯대왕이 죽은 후에 그의 아들들이 또한 로마제국에 가서 왕권을 받아 와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에 사용하신 인물이 헤롯대왕인지 그의 아들들인지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 귀인이 헤롯대왕이라면 그는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 시도했던 자입니다. 예수님 살해에 실패하자 베들레헴 지역의 아이들을 학살했습니다.

만일 이 귀인이 헤롯대왕의 아들들이라면 그중에 세례요한을 목 베어 죽이고 예수님을 죽이는 재판의 자리에 앉았던 자입니다. 빌라도와 협조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했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 그를 오늘 비유에 사용하셨습니까? 그가 실시하는 행위를 보면, 마태복음 25:14-30의 달란트 비유와 대단히 유사합니다. 마태복음에는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였습니다. 그는 타국에 왜 갔는지 그 목적이 드러나 있지 않습니다. 그는 주인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그 사람이 귀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와서는 으로 통치했습니다.

이 두 사람의 경우 실시한 일은 같았습니다. 종들에게 돈을 맡겼습니다. 그리고 돌아올 때까지 경영하라고 명령했습니다.

마태복음은 달란트입니다. 누가복음은 므나입니다. 달란트가 훨씬 더 큰 단위이지만, 므나도 대단히 큰 돈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받은 돈을 경영하여 이문을 남겼습니다. 그들은 착한 종으로 평가 받았습니다. 돈을 맡긴 자가 좋아했습니다. 마태복음에서 주인은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상을 내렸습니다.

누가복음의 왕은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고 했습니다. 다섯 고을 권세를 차지하는 상도 내렸습니다. 그러나 아무 경영도 하지 않고 받은 그대로 가지고 온 종은 있는 것도 빼앗겼습니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마태복음 25:29

주인이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누가복음 19:26

이 형벌은 내용이 똑같습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에는 추가된 내용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왕위를 받으러 나갈 때 그 백성이 그가 왕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왕이 되어 돌아온 이 사람은 바로 그 원수들을 자기 앞에 끌어다가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이것이 이 비유의 첫 부분과 마지막 부분입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 둘 다 예수님 당신에 대한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늘에 돌아가셨다가 다시 재림해 오실 때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때까지 사람들은 모두 달란트거나 므나를 받아 그것을 남기는 경영을 명령 받습니다. 누구든지 많은 이문을 남겼다면 그는 착한 자로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상을 받거나, 열 고을 혹은 다섯 고을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예수님께서 다시 재림하여 오실 때까지 받은 바 달란트, 혹은 므나가 있습니다. 한 달란트 받았지만 땅에 묻어두었던 종이나, 받은 므나를 수건으로 싸두었던 종이나 모두 형벌을 피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문을 남겼다면 주님의 즐거움에 참여하거나 열 고을 혹은 다섯 고을을 차지하는 권세를 상급으로 받습니다.

오늘 누가복음에 추가된 내용을 주목합니다. 그것은 그 귀인이 왕이 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백성에 관한 것입니다. 그들은 그 귀인을 미워했습니다. 그래서 사자를 뒤로 보내 그 먼 나라에 전갈했습니다. “우리는 이 사람이 왕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귀인은 성공적으로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므나를 나누어 준 종들을 불러 회계했습니다. 각각 알맞게 상급을 주거나 처벌을 내린 이후, 그는 자기를 반대하여 왕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던 자들을 그 앞에서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받은 바 므나대로 일한 것을 회계하고 상과 벌을 내린 이후, 그가 왕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던 자들을 심판하여 영원한 죽음을 선고하는 것입니다.

분명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 천국으로 올라가셨다가 다시 오실 그 때까지 우리 모두는 사명이 있습니다. 그것이 달란트거나 므나거나 우리는 받은 그것을 최선을 다해 경영하여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세례요한이 경고한 그대로,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질 것입니다.

아울러 예수님을 반대하여 왕의 왕이 되시는 것을 거역했던 자들은 주님의 재림의 날에 심판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여기까지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두 복음서를 통해서 주님께서 하늘로 승천하시면서 재림하실 때까지 우리 모두에게 주신 달란트내지 므나사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 오실 그 날이 언제인지 알 수 없지만 최선을 다해서 경영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정말 시간이 없습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어야 합니다.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어째서 예수님은 당신과 하늘, 하나님과 그 아들, 재림과 심판, 그런 거룩한 주제를 다루시는 데 있어서 왜 헤롯대왕이나 그의 아들들을 비유의 배경으로 삼으셨을까요? 예수님과 달리 그들은 악한 자들 아닙니까?

이것은 어쩌면 당시 사람들이 모두 익히 잘 아는 내용을 비유로 드시던 데서 유래한 것일 줄 압니다. 예수님의 모든 비유는 사람들이 한번 들으면 곧 알 수 있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건이나 현상 등을 드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다가 천국의 비밀을 잇대어 설명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헤롯대왕이나 그의 아들들이 로마에 가서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는 오늘 누가복음의 본문은 예수님께서 하늘나라로 가셔서 재림주의 권세를 가지고 돌아오시는 것을 설명하기에 참 좋은 소재였을 것입니다.

그래도 그렇지. 왜 하필이면 헤롯대왕이나 그의 아들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비유로 드시는 사건이나 인물들은 언제나 긍정적인 인물만 드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누가복음 16:1-13에 등장하는 옳지 않은 청지기 비유입니다. 이 사람은 부정한 방법으로 주인의 재산을 축내면서 자기의 내일을 준비했습니다. 설령 내일을 준비하는 행위가 선하고 바람직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처럼 거짓으로써 주인을 해롭게 하면서까지 이래야 하는가? 그런 의구심을 버리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 말씀을 설교할 때, 나는 이 옳지 않은 청지기도 이렇게 내일을 준비하는데, 하물며 우리는?” 이런 질문을 드렸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내일을 예비해야 합니다. 사람이 이 세상을 살면서 천국 준비를 하지 않으면 정말 안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오늘 비유에서 이 악한 사람이 돈을 주고 세속의 권세를 사 가지고 돌아오는 경우에도, 그 종들은 그 주인의 부재 중에 해야 할 사명이 있다는 것을 배웁니다. 그들은 받은 바 므나를 경영하여 이득을 남겨야 하는 것입니다. 이 사악한 자에게도 그렇게 해야 하는데, 하물며! 하물며 우리 주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데!

여기가 우리가 멈추어 깊이 생각해야 할 대목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오시는 예수님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하는 우리 삶을 돌아봅니다.

그리고, 하나 더! 이 악한 자가 왕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던 백성이 그가 돌아온 때 그의 앞에서 죽임을 당하는데, 하물며! 하물며 예수님을 반대하고 죽이려고 하던 자들이 주님께서 하늘 왕권을 가지고 돌아오실 때 어떤 형벌을 받을 것인가! 그것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이번 주 금요일과 토요일, 우리는 강견실 장로님 천국귀향예배를 드립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돌아보는 추모예배와, 그의 몸을 땅에 묻으면서 하늘 소망을 바라보는 예배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 잔치집보다는 초상집에 가라고 하셨던 주님. 우리가 초상집에서 배울 것은 깊고 귀한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진리입니까?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 앞에 받은 바 그 모든 달란트므나에 대하여 회계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강견실 장로님을 기쁘게 받으신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브리서 11:6

이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것인가? 그렇습니다. 우리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강견실 장로님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장로님의 마지막이 하나님께 온전히 드렸던 것처럼, 오늘 우리의 마지막이 온전한 헌신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이번 우리가 드리는 일련의 예배들에게 배워야 할 것입니다.

아니, 이것 보십시오. 사람은 불완전합니다. 강견실 장로님이 이 세상 사는 동안 그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쁨을 드릴 수 있었던 것은 그분을 지키고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 없이는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그분의 목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 사랑을 생각하지 않고 누구도 강견실 장로님이 누리고 살아갔던 영생을 이야기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에게 오셨으며, 우리의 삶에서 아름다운 생명의 꽃을 피워내신 우리 주 예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모든 힘을 다하여 예수님의 이름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이름을 온 세상에 증거 하는 놀라운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악한 왕 헤롯대왕과 그의 아들들 이야기를 펼쳐놓으시면서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우리에게 선하고 아름다우신 당신, 참된 왕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익히 잘 알 뿐 아니라 결코 오해할 수 없는 사건과 인물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전파하신 예수님의 그 깊으신 뜻을 가슴에 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왕 됨을 반대하는 어리석음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의 뜻을 따라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의 뜻을 따라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습니다. 사흘만에 부활하사 하늘에 오르셨습니다. 다시 돌아오실 것을 분명하게 말씀해 주시고!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기 직전에 주신 말씀입니다. 보십시오! 예수님의 비유 이야기는 결국 당신의 이야기였습니다!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때 사람들이 외쳤습니다.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

누가복음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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