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편73:28)

성도를 온전하게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교회

5-2설교#어린이주일#새방언을 말하며


2021년 5월 2일

금문교회 어린이주일예배 GGPC Children’s Sunday Worship

조은석 목사 Rev. Eun Suk Cho


새 방언을 말하며 They Will Speak in New Tongues

마가복음 Mark 16:17b


14.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Afterward he appeared to the eleven themselves as they were reclining at table. And he rebuked them for their unbelief and hardness of heart. Because they had not believed those who saw him after he had risen.

15.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And he said to them, “Go into all the world and proclaim the gospel to the whole creation.

16.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Whoever believes and is baptized will be saved, but whoever does not believe will be condemned.

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And these signs will accompany those who believe. In my name they will cast out demons. They will speak in new tongues.

18.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They will pick up serpents with their hands. And if they drink any deadly poison, it will not hurt them. They will lay their hands on the sick, and they will recover.”

19.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So then the Lord Jesus, after he had spoken to them, was taken up into heaven and sat down at the right hand of God.

20.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 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

And they went out and preached everywhere, while the Lord worked with them and confirmed the message by accompanying signs.



어린이주일입니다.

새 방언을 말합니다. 어린이가 세상에 태어나 말을 새로 배우는 것처럼, 오늘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경이로움과 은혜의 세상을 성령님의 새 언어를 통해 말을 시작합니다.


오순절 성령님께서 임하셨습니다. 120명의 성도들은 성령님께서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구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예수께서 한 어린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At that time the disciples came to Jesus, saying, “Who is the greatest in the kingdom of heaven?” And calling to him a child, he put hi in the midst of them, and said, “Truly, I say to you. Unless you turn and become like children, you will never enter the kingdom of heaven. Whoever humbles himself like this child is the greatest in the kingdom of heaven.”

마태복음 Matthew 18:1-4


어린아이와 같이 되는 것은 여러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그 중에 “새 언어”로 말하는 것이 포함됩니다. 새 방언입니다.


오순절 성령임재를 체험한 예루살렘 교회를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이 소동했습니다.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And they were amazed and astonished, saying, “Are not all these who are speaking Galileans? And how is it that we hear, each of us in his own native language?”

사도행전 Acts 2:7-8


성령님의 소통의 역사가 일어나자, 모든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가 되었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성령님께서 역사하신 것입니다. 불가능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불통이 소통이 되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메시지”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보십시오. 이제 예루살렘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에는 자기 언어로 배반하고, 질투하고, 서로 높아지려고 주장했던 그들이었습니다. 베드로가 일어서서 설교합니다.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But Peter, standing with the eleven, lifted up his voice and addressed them: “Men of Judea and all who dwell in Jerusalem, let his be known to you, and give ear to my words!”

사도행전 Acts 2:14


무서워 도망하던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원망하고 미워하며 질투하던 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마음에는 “사랑”이 가득했습니다. 듣는 모든 사람들을 진심으로 사랑했습니다.


성령님께서 임재하셔서 그들을 변화시켰습니다. 그 모든 변화 가운데, 특별한 것이 “언어의 변화”입니다. 그들이 품고 있는 “메시지”가 달라졌습니다. 주님께서 그들의 입에 넣어주신 그대로를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너희가 나로 말미암아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게 되리니, 이는 그들과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를 넘겨줄 때에 어떻게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And you will be dragged before governors and kings for my sake, to bear witness before them and the Gentiles. When they deliver you over, do not be anxious how you are to speak or what you are to say, for what you are to say will be given to you in that hour. For it is not you who speak, but the Spirit of your Father speaking through you.

마태복음 Matthew 10:18-20


우리가 스스로를 변호하는 말을 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제 말하는 것은,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하는 말은 “증거”(testimony)입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들어보십시오.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But this is what was uttered through the prophet Joel: And in the last days it shall be, God declares, that I will pour out my Spirit on all flesh, and your sons and your daughters shall prophesy, and your young men shall see visions, and your old men shall dream dreams. Even on my male servants and female servants in those days I will pour out my Spirit, and they shall prophesy.

사도행전 Acts 2:16-18


보십시오. 이미 성경에 예언한 말씀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 말씀이 온 땅에 퍼졌습니다. 그 말씀이 온 땅에서 역사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그 말씀을 받았습니다. 성령님께서 그 말씀을 우리 입에 주셨습니다.


시내산에서 모세를 부르셨을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Now therefore go, and I will be with your mouth and teach you what you shall speak!

출애굽기 Exodus 4:12


어린이주일입니다. 우리교회가 주일학교가 있습니다. 담당 목사님이 매주일 기도하면서 말씀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기도하면서 주일학교와 미래 세대를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동시에 우리는 어린아이들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앞서 인용한 주님의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구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예수께서 한 어린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At that time the disciples came to Jesus, saying, “Who is the greatest in the kingdom of heaven?” And calling to him a child, he put hi in the midst of them, and said, “Truly, I say to you. Unless you turn and become like children, you will never enter the kingdom of heaven. Whoever humbles himself like this child is the greatest in the kingdom of heaven.”

마태복음 Matthew 18:1-4


어떤 시인 (William Wordsworth)은 그의 시 “무지개”(Rainbow, 1802)에서 말했습니다:


어린아이는 어른의 아버지!

The child is father of the man!


전체를 인용해 보겠습니다.


My heart leaps up when I behold.

A rainbow in the sky:

So was it when my life began;

So is it now I am a man;

So be it when I shall grow old,

Or let me die!

The Child is father of the Man;

And I could wish my days to be

Bound each to each by natural piety.


내 마음은 뛴다, 내가 내다볼 때.

무지개가 하늘에 있구나.

내 인생이 시작될 때 그랬다.

내가 이제 어른이 된 때도 그렇다.

내가 나이들어 늙을 때도 그럴 것이다.

아니면 차라리 죽으리라!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

그리고 내가 내 날들에 소망한다.

자연의 경건으로 서로 묶이기를!


역설입니다. 아이가 아빠를 보고 늘 배우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가 어린이에게 배우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를 생각할 때 열리는 새로운 세계입니다.


어렸을 때 무지개를 보고 마음이 떨렸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때의 그 감동을 나이가 들어가면서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힘쓰는 것입니다. 차라리 죽을지언정! 그 순수, 그 감동, 그 은혜를 기억하려는 것입니다.


무지개는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의 식구들에게 “새 언약의 징표”로써 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아담과 하와에게 주신 “가죽옷”이나, 가인에게 주신 “표”와 같은 의미입니다. 그것은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죄를 씻어 구원하러 오시는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미리 보이신 것입니다.


우리가 가죽옷이나 표에 대한 구체적인 표상은 없습니다. 그런데 “무지개”는 제법 뚜렷합니다. 십자가를 미리 보여주는 은혜가 있습니다.


오늘날 일곱 색깔 무지개가 여섯 색깔로 바뀌어 동성애자들의 표상이 되었습니다. 성경말씀을 비틀어 진리를 왜곡하는 형편입니다. 이 세상에서 세속에 물들어 살면서 하나님의 진리 말씀을 받지 않는 사악함입니다.


그런데 워즈워드의 시에 드러난 “어린아이”와, 그 어린아이를 닮으려는 “어른”의 모습은 오히려 아름답습니다.


무지개는 그 자체로 메시지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새 언약”인 하나님의 말씀, 성경의 눈으로 볼 때 메시지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표상 중의 표상인 “성경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으로써 우리는 가슴이 뛰는 놀라운 천진스러움이 있습니다. 여기서 “어린아이에게서 배우는 기쁨”이 있습니다. 차라리 죽을지언정 결코 잃어버릴 수 없는 순수함, 거룩함, 온전함이 여기 있습니다.


어린아이의 언어로 새롭게 말을 합니다. 익숙함을 버리고 낯설게 되는 은혜입니다.


러시아형식주의 문학이론은 “문학의 기능”을 “낯설게 하기”로 정의합니다. 어디 문학 뿐입니까? 샌프란시스코를 무대로 세계인에게 주목 받았던 댄서 이사도라 던컨(Angela Isadora Duncan, 1877-1878)은 그의 춤으로써 자연을 기억나게 했습니다. 바람, 구름, 산, 바다, 강, 그런 것들이 무대 위에 펼쳐졌습니다.


사람을 보고 그런 자연을 보게 되면 자연이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 댄서가 앞에 나선 것입니다. 그러나 자연을 보고 사람을 보면 사람은 자연의 일부입니다. 태어나서 살다가 죽고 마는 것.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사람을 보기 전에 “하나님을 뵈어야” 합니다. 이사도라 던건이 하나님을 뵙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이었더라면 그의 춤에서는 인간이 자연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인간을 통해 풍겨 나왔을 것입니다.


무릇 예술이 그렇고 문학이 그렇습니다. 과학도 경제도 건축도, 사람이 살아가는 모든 모습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아름다움, 창조와 구원의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모든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통하여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무지개를 보고 가슴이 뛰는 어린아이는 세상 모든 만물을 보고 감동합니다. 지루하지 않습니다. 권태가 없습니다. 절망하지 않습니다. 우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무지개를 보는 사람은 그 영적 감동으로 말미암아 삶이 변합니다. 그의 언어가 처음 변합니다. 그리고 끝까지 그 변화가 지속됩니다. 자기의 언어가 아니라 성령님의 언어가 되는 놀라운 체험입니다.


설교입니다. 나는 설교는 이런 놀라운 성령님의 체험을 한 사람의 새로운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계속 들어보십시오.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This Jesus, delivered up according to the definite plan and foreknowledge of God, you crucified and killed by the hands of lawless men. God raised him up, loosing the pangs of death, because it was not possible for him to be held by it.

사도행전 Acts 2:23-24


보십시오. 예수님의 부활을 그가 증거하고 있습니다! 부활의 현장에 가서 빈 무덤을 확인하고도 믿지 않았던 그였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뵌 막달라 마리아의 말을 듣고도,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가 그 밤에 되돌아와 증거할 때도 전혀 믿지 않았던 그였습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감화감동하시자, 그가 마침내 입을 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이것이 그의 설교의 핵심이었습니다. 이것은 새 방언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살아계십니다.


보십시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던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천지가 다 바뀐 것입니다. 온 세상이 생명을 얻었습니다. 무의미하던 모든 것이 새로운 의미를 얻었습니다.


어떤 대학교 교수에게 사랑하는 아내가 있었습니다. 그 아내가 죽었습니다. 얼마 후 그 교수도 따라 죽었습니다. 절망이 그의 원인이었습니다. 그가 남긴 글은 대략 이렇습니다.


아내가 없다.

대문을 열고 맞아주던 아내가 없다.

책을 읽고 있을 때 창문 저편 옥상 장독대를 올라가던 아내의 발자국 소리도 없다.

전화기 저편으로 울리던 명랑한 그 목소리도 없다.

해가 저물던 저녁, 공원을 걸을 때 길게 깔리던 아내의 그림자도 없다.

온 세상에서 아내가 없다.

나는 어디로 갈까.


그러나 이것 보십시오. 무지개를 보고 감동하던 어린아이는, 배우자 되는 처녀를 만나 뛰는 가슴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배우자를 먼저 하늘나라에 보낸 이후에도 그 사람은 끊임없는 감동으로 하늘을 우러릅니다. 그에게는 그를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죽음공포는 모든 사람들의 숙제입니다. 사람은 결국 모두를 떠나보내고 말 것입니다. 사랑하고 의지하던 부모님께서 가십니다. 선생님들도 하나 둘씩 사라집니다. 형제들도, 친구도, 마침내 아내도 남편도 세상을 떠납니다.


그러나 이것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은 부활의 첫 열매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Jesus said to her, “I am the resurrection and the life. Whoever believes in me, though he die, yet shat he hive. And everyone who lives and believes in me shall never die. Do you believe this?”

요한복음 John 11:25-26


베드로의 새 언어는 성령님의 언어였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할 수 있게 하십니다.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And no one can say, “Jesus is Lord” except in the Holy Spirit.

고린도전서 2 Corinthians 12:3b


예수님께서 부활의 주님이심을 성령님께서 증거 하신 것입니다. 그것을 어린아이 같은 자가 받아들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어린아이처럼 되게” 하십니다. 교만한 맘을 내버리고 소란하지 않고, 오히려 겸손하고 고요하게 하십니다.


성경말씀 배우던 어린 시절을 생각합니다. 그 말씀이 얼마나 달고 귀한지!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으로 심상희 선생님이 부임해 왔습니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내가 5학년 때까지 계셨습니다. 그동안 심상희 선생님은 내 아버지의 교회 주일학교에서 교사로 성경을 가르치시고 설교하셨습니다.


교장선생님으로서 그분은 받아쓰기와 일기쓰기를 가르쳤습니다. 주일학교 교사로서 예수님의 말씀과 “예수 사랑하심은 거룩하신 말일세” 아름다운 찬송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은퇴하신 이후,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우리 교회를 찾아오셨습니다. 예배 중에 특송을 불렀습니다. “예수 사랑하심은 거룩하신 말일세.” 나이는 들어가도 언제나 어린아이의 감동과 감격으로 살아나는 내 교장선생님, 내 주일학교 선생님이었습니다.


사실, 내가 그분을 처음 뵌 것은 학교 정문에 들어선 어디 근방이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이었습니다. 먼저 그분이 내게 왔습니다. “선생님에게 인사해야지?” 나는 어떤 할머니가 선생님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면 교장실로 가자!” 그제서야 나는 그분이 새로 오신 교장선생님인 줄 알았습니다. 고개를 꾸뻑 하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때 나를 보내주셔서 풀려났는데, 그 주일 교회에 나오신 것입니다. 아버지는 그분을 주일학교 교사로 임명하셨습니다.


이후에 나는 그분께서 칭찬하시는 말씀을 많이 들었습니다. 연필도 공책도 주시면서, “인사를 참 잘해서!” 하셨습니다. 나는 학교에서 “상”을 받은 일이 받아쓰기와 개근상 말고 없었지만, 주일학교 교사이신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연필과 공책을 받았습니다.


우리교회는 좋은 주일학교가 있습니다. 민경득 목사님 내외분께서 기도하면서 성심으로 주일학교를 이끌고 있습니다. 우리가 계속 기도해 후원해야 합니다.


나는 금문교회 주일학교를 통해 내 아들 명인이를 길렀습니다. 조카 아이들도 대개 금문교회 주일학교 출신입니다. 집사님 장로님의 자녀들과 손자 손녀들이 금문 주일학교를 통해 성장했습니다.


지금은 목사안수 받아 사역 중인 최 전도사님도 주일학교 담당이었습니다. 김성진 목사님과 김재은 목사님도 주일학교 담당 사역자였습니다. 김성진 목사님은 금문교회 주일학교 사역내용을 바탕으로 목회학박사 논문을 썼습니다.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어린이 때의 감동과 기쁨을 품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린이처럼 되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오늘 우리가 기억합니다.


우리교회는 장로님 권사님들이 여러분 계십니다. 마음이 항상 온유하고 아름다운 분들이십니다. 행동도 말도 어린아이와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그 마음에 성령님께서 계시기 때문인 줄 압니다. 천국 소망이 여러분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 받은 우리가 사용하는 말은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언어입니다. 내 스스로 계획한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님께서 우리 입에 넣어 주신 말입니다.


올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Francis McDomans (64)가 맥베드를 인용해서 수상소감을 말했다는 대목입니다:


I have no words; my voice is my sword.


나는 여기 “my sword”에서 “my”와 “s”를 빼고 읽습니다.


I have no words. My voice is the Word.

나는 할 말이 없습니다. 내 목소리는 내게 주신 말씀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길입니다.


우리 교회 모든 어린아이들에게 오늘 나는 이 말씀을 줍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Your word is a lamp to my feet, and a light to my path.

시편 Psalm 119:105


일평생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는 누구라도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가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을 축복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천국 소망을 바라보며, 어린아이 때의 감동을 그대로 가지고 살아가는 모든 성도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기도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은혜와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어린이주일을 맞아 금문교회 성도의 모든 가정에 아이들을 축복합니다. 또한 나이가 들면서도 어린아이의 감동을 결코 잊지 않고 품고 살아가는 모든 성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천국에 이르도록 주여 함께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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